랑군 시장에는 보석가게도 있었다. 버마는 보석이 많이 나는 곳이었기 때문에 루비나 비취가 특히 싼 편이었다.

친구들 중에는 보석을 많이 모으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하나정도는 가지고 있는게 좋을 것 같아서 큰 맘 먹고 다이아몬드를 사기도 했다. 일본의 활동사진이나 일본에서 온 가부키 공연을 보러 간 적도 있었다. 가부키는 배우들이 의상을 여러 개 겹쳐 입고 있던 것과 남자배우가 여자 역할을 하던 것이 신기했다.

 

 

 

어쩌다 모처럼 놀러 왔으면서도 방구석에 방구석에 아무 말도 없이 무릎을 꿇어 앉아 있는 젊은 병사들도 간혹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상관에게 얻어맞았다거나 해서 엄청 속이 상하거나, 돈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내가 술을 살게요 하고 술을 사서 마시도록 해주었다. 그런 일은 곧바로 부대에서 소문이 퍼졌던 모양으로 며칠 뒤면 반드시 그 병사의 상관인 사람이 와서 표를 한 두장 여분으로 놓고 돌아가곤 했다. 그럴 때면 팁도 쥐어 주었다.

 

 

 

그 당시 천원이면 대구에서 작은 집 한채를 살 수 있었다.

 

 

 

저금해 둔 돈 중에서 5천 엔을 송금했다. 담당하는 병사에게 물어보니 "저금이 있다면 전부 보내는 게 좋을 걸." 이라고 했지만, 나는 "남은 돈은 조선에 돌아가서 출금할 거니까 괜찮아요."라고 대답하고 전부 부치진 않았다. 우선 부친 돈이 제대로 도착할지가 걱정이었고, 겨우 모은 저금이 없어지는 것도 왠지 불안했다.

 

 


우리가 사이공에 있었던 그 때가 우기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사이공에서 레인코트를 샀던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레인코트는 프랑스산으로 아주 산뜻한 녹색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 녹색이라 그 레인코트를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디자인은 특별한 것이 없었으나 타는 듯한 녹색이 아주 멋졌다.

나는 악어가죽 핸드백에 하이힐을 신고 녹색 레인코트를 입은 멋진 차림으로 사이공의 거리를 활보했다. 아마 누가 보더라도 내가 위안부로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아주 그립고 그때의 자신만만함이 되살아나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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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들의 위장색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일단 멋진 군함들을 한번 보자


 



 

전함부터 항공모함까지 여러가지 포지션을 가진 멋진 군함들이 있다.

근데 군함을 보다보면 모두 비슷한 점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대부분 '회색' 계통의 색을 띠고 있다는 거야.

그 이유인 즉슨, 회색은 바다에서 가장 뛰어난 위장색이어서 많이 사용하는 것.





 

하지만 바다니까 파란색이 더 위장에 효과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겠지만,


 



 

회색은 수평선의 색과 비슷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회색은 무채색이기도 해서 분간하기도 어렵고,





 

여기에 바다에선 흔한 해무마저 끼면 수평선 너머에 있는 군함을 식별하기는 쉽지 않다.

이 정도는 여름철에 흔하게 볼 수 있는 해무로

저기 수평선 너머에 회색 군함이 있다면 정말 찾기 힘들 것으로 사료된다.

이렇게 회색은 바다에서 가장 적합한 위장색이지만, 한때는 다른 위장이 유행인 시절이 있었다.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줄무늬 모양은 다즐(dazzle) 위장이라는 건데,

1차 대전 때 유보트에 하도 쳐맞아서 만들어낸 위장이라 한다.

 

이때 당시 어뢰 공격 방식은 발사해서 직접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예측샷이었기 때문에

배의 앞/뒤를 헷갈리게 만들어서 진행 방향 / 속도를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기 위해 이런 위장이 탄생했다는 것.
 




 

그 위장의 취지에 맞게 앞뒤 구분이 잘 가지 않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 위장은 어디에서 기인한 아이디어일까?





 

다즐 위장(Dazzle Camouflage) 은 보다시피 얼룩말의 위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위장은 본래 물체를 주위 환경에 결부시켜 눈에 띄지 않게 하기위한 것이며,

그 정의에서 보면 다즐 위장은 반대로 관심을 끌기위한 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지만





 

함선을 완전히 눈에 띄지 않게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적을 상대로 함선의 함종, 규모, 속도, 진행 방향 등의 파악을 어렵게 만들고

광학 거리계에 따른 함포 사격, 어뢰 공격을 방해할 목적으로 고안된 다즐 위장은

함선을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적을 혼란시키는 것을 의도하고 있다.

 



 

뱃머리에 물결을 그려놓은 위장도 같은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위장들은 분명 어떤 위치에서 공격을 할 것이냐 하는 적의 판단에 혼란을 유발하는 것.

이후 레이더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식의 위장은 점점 사라지고 회색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모든 군함이 모두 회색계열인건 아니다.

위 사진의 후베이급 고속함처럼 예외도 있긴 하다.

임무에 따라 연안경비등이 목적이면 다른 색으로 도색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해양경찰 소속 함정들은 모두 흰색이다.

위장의 목적이 아니라 도리어 눈에 잘 띄어야 하기에 그렇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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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비의 카페트

 

 

우리나라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서나,

TV 드라마, 역사서, 연극 등 미디어 매체에서는 이른바 국모(國母)로써 추대하는 '명성황후'는

실제로 고종만큼이나 무능하면서도 고종보다도 더 악랄하고 이기적인 여자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민비를 주제로 한 영화 포스터



이른바 '명성황후' 도 자기 자신만 명성황후라 떠들고 다녔던 조선만의 우물안 개구리 명칭.

황후로서의 품격이나 자질은 눈꼽만큼도 없었고, 어떻게 하면 백성들을 더욱 쥐어 짜 내

자신의 가오를 지킬 수 있을까, 허영을 채울 수 있을까만 연구하던 희대의 악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 글에서는 '명성황후'라는 고매한 표현 대신 올바른 '민비'라는 표현으로 일관하겠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맨 처음 사진에 제시된 거대하고도 넓은 카페트를 보라.
민비의 표범가죽 48조각을 이어만든 카펫으로, 당시 서양 외교관들도 보고 혀를 내둘렀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던 중 6.25 전쟁 당시에 단돈 25달러에 미국인이 사들여 미국으로 반출되었다.

민비가 직접 사용하던 카페트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확실한건 뒤에 조선황실의 문양이 찍힌것을 보아 황실에서 쓰던게 맞다는 박물관 관계자의 말.

 

 

 

흥선대원군과 민비로 추정되는 사진 서울문화투데이
한겨레

 


민비의 사치는 국고를 바닥낼정도로 미친년이라고 원성이 자자했다.
특히 자신의 아들 순종에 관한 사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또한 민비는 시간이 날 때마다 이른바 조선 강토의 전국 명산마다

굿판을 벌여서 나라 전체를 무속이 판치는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조세로 거둬들인 돈을 무당에게 바치고 있었는데, 당시 세계는 산업화에 힘입어 여러 혁명이 일어나고 있을 때

우리의 국모께서는 돈을 바닥에 뿌리며 귀신놀이에 한참 심취해 있었다.


 

당시 고종의 후궁 클라스

 


또한 질투와 시기심도 많아 왕의 후궁은 왕이 붕어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인사에 관여할 수 없었는데,

민비는 그 원칙마저 자기 마음대로 하여 고종의 후궁들을 궐 밖으로 다 내쫓았다.

 

 

민비 추정1
민비 추정2
민비 추정3
민비 추정4



민비로 추정되는 사진들을 보면 다 외모가 다르다. 하지만 다 민비로 추정되는 초상화들이다.
그만큼, 남편인 고종의 정확하게 남아있는 사진에 비해 민비는 그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그 이유인 즉슨, 민비는 사진 찍기를 극도로 혐오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암살' 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민비는 암살의 공포로 인해서 매일 새벽 5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본인이 암살당할 만한 존재라는 것은 어느정도 인지를 하고 있었던 듯 하다. 

 

 

민비가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우리의 선입견과 다르게 궁녀로 변장해가며 구질구질하게 탈출하다 실패해서 죽음을 당했다고 전해져 온다

 


결론은 일제 건달들에게 궁궐을 침범당하고 암살당했다.



'나는 조선의 국모다.'

 

라고 전해져 오는 말과 다르게 최대한 불쌍하고도 품위없게 목숨을 구걸하다

일본인들에게 조롱동하며 죽음을 맞이했다고 전해진다.

억울하게 희생된 조선 백성들의 한을 무당 굿판으로도 막을 수 없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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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8 - [정치권 이슈] - 이승만에 대한 진실

 

이승만에 대한 진실

1. 이승만은 1875년에 태어난 인물로 출생일 기준으로 이승만과 정조 사망(1800년)의 시간적 거리가 2019년인 오늘보다 더 짧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의 인물이다. 2. 이승만은 우리나라 최초의 일간지인 '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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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달리 이승만은 '무국적'을 고집했다.

곧 독립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김구는 중국 국적이었으며 서재필은 미국 국적이었다.





2. 독도가 우리 땅이 된건 이승만의 평화선 때문이다.

해방후 미국이 설정한 일본의 수역경계선인 맥아더라인이 52년 무효화되자

이승만은 미국/일본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통령령으로 독도를 포함하는 해양 경계선을 일방적으로 그어버린다.

이승만은 이 평화선을 넘는 일본배는 모두 나포하라고 지시하였으며

실제로 이승만은 일본 어선 328척, 어부 약 4천명을 억류했고 그중 44명이 사망했다.  





3. 이승만은 원자탄을 개발하려고 했다. 이승만은 일본을 항복시킨 원자탄의 무서움을 알고있었고,

원자탄을 통일을 위한 무기라고 생각했다.

원자폭탄을 염두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로를 인적이 드문 곳에 지으려 하였으나

미국의 반대로 서울 공대가 있던 공릉동에 짓게 된다. 





4. 우리나라가 원자력 선진국이 된 것은 이승만 덕분이다. (한국 수력원자력 세계2위)

1950년대부터 이승만은 원자력에 엄청난 투자를 하였는데,

당시 정부조직 전체 1~2급 공무원 110여명 중 원자력원에 소속된 1~2급 공무원만 20명이 넘었고,

봉급도 3배가 넘었으며 배정된 예산도 1억 4천만원으로 중앙공업연구소 예산 200만원의 70배에 달했다.





5. 이승만은 임기동안 2만명 이상의 국내 인재를 해외로 국비유학을 보냈다.

이들은 이후 박정희 시절 근대화/공업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6. 이승만과 김구는 경마를 좋아해서 신설동에 있는 경마장에 매주 주말 나타났다. 





7. 이승만은 3개국어를 하였다.

영어는 미국인보다 잘했으며 심지어 글을 쓸땐 영어로 쓰고 이후에 한글로 번역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부부간의 대화를 위해 오스트리아의 언어인 독일어도 구사할 수 있었다. 거기에 한자는 기본.





8. 미국은 이승만을 제거하기 위해 유엔군사령부 주도로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는 '에버레디 작전'을 만든적이 있다.

이승만은 친미인사로 분류되었지만 가장 미국을 경계했고 미국 정책에 반대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9. 이승만은 조선왕조를 극도로 싫어했다. 해방 후 이씨 왕족들에게도 홀대했다. 





10. 이승만은 16살때 결혼했지만 이후에 이혼했고, 둘 사이에 아들이 있었으나 병으로 잃었다.

이승만은 58세 때 프란체스카 여사(당시 33세)를 만나 결혼했고, 둘은 각각 90살/ 91살까지 장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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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에 대한 진실

1. 이승만은 1875년에 태어난 인물로 출생일 기준으로 이승만과 정조 사망(1800년)의 시간적 거리가 2019년인 오늘보다 더 짧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의 인물이다. 2. 이승만은 우리나라 최초의 일간지인 '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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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0 - [정치권 이슈] - 이승만에 대한 진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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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승만은 하버드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을 때,

대학 당국에 자신은 하루라도 빨리 조국으로 돌아가야하니 2년 안에 박사학위를 주면

하버드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하겠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

그러나 거절당해서 프린스턴으로 가서 공부하였는데,

당시 프린스턴대 총장이 이후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하게되는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었다.

 

이승만은 윌슨한테 직접 박사학위를 받았다. 윌슨은 이승만을 매우 아껴서 가족파티에도 초대하기도 했다. 





2. 이승만은 초등학교 6년 무상 의무교육제를 도입했다. 48년 문맹률 80%에서 10년만에 22%로 낮아졌다.

 

이승만은 예산의 10% 이상을 교육에 투자했는데, 외국어 인재를 위해 한국외대가 이승만의 주도로 설립되었고,

공업교육을 위해 독립운동 시기 자신이 세웠던 하와이의 학교를 팔아 인하공대를 설립했다.

인하공대라는 이름은 인천의 '인' 하와이의 '하'자를 따서 만들었다.

한국의 첫 남녀공학 학교도 독립운동 시절인 1918년 이승만이 설립했다. 





3. 1953년부터 1960년까지 우리나라의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7.3%로 당시 후진국의 연평균성장률 4.4%를 훨씬 앞섰다.





4. 이승만과 프란체스카 여사는 25살 차이가 났는데,

결혼식 때 반지를 포함한 모든 결혼 비용은 프란체스카 여사가 부담했다. 이승만이 워낙 가난했기 때문이다. 



 


5. 이승만은 같은 친미파였던 서재필과 굉장히 달랐다.

서재필은 미국에서 유학하며 조선을 혐오하기 시작했고, 조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부정하였다.

 

그러나 이승만의 경우 조선의 체제를 부정하면서도 조선인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굉장히 가부장적이라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폭행을 시전하기도 하였고,

서정주가 이승만 전기를 쓸때 이승만 부친의 이름에 존칭을 붙이지 않자,

예의도 모르는 놈이라고 출판 금지를 시킨적도 있다. 

서재필은 조선의 가족문화를 혐오했는데,

이승만은 6.25 전쟁 당시 '후사없이 죽게되어 불효자'라는 유서를 품속에 들고 다닐만큼 유교적 가족관을 유지했다. 





6. 프린스턴 대학교 우드로 윌슨 스쿨에는 '이승만 홀'이라는 이름의 대형 강의실이 있다. 





7.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고 아이젠하워를 만났을 때 태극기를 선물한 적이 있다.

아이젠하워가 태극기를 한 손으로 받자, 한 나라의 국기를 받을 때는 두손으로 받는 것이 예의라고 다시 뺏었다.

아이젠하워는 다시 두 손으로 받은 뒤 악수를 건냈다.





8. 이승만의 친아들은 어릴때 병사했고, 이후 이기붕의 친아들인 이강석을 양자로 들였다.


이강석은 정치테러와 부정선거를 행한 자신의 친아버지를 몹시도 증오하였고

결국 4.3 혁명이 일어나 이승만이 하야하자 이틀 뒤 자신의 생부와 생모 그리고 남동생을 권총으로 쏘고 자살한다.





9. 광복 1년이 지나고 미군정이 시행한 여론조사를 보면

조선국민 전체의 77%가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원했고 14%만이 자본주의를 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은 보통선거권과 유상몰수 유상분배를 통한 사유재산권 제도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했다. 





10. 이승만의 유언은 성서 구절이다. 신약성서 갈라디아서 5장 1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너희는 다시는 노예의 멍에를 메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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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이어트란

 

다이어트는 말 그대로 섭취한 열량보다 소비한 열량이 많을 때 체성분을 이루고 있는 영양분들을 분해해서

그 열량을 만들어내게 하고, 결과적으로 체중이 감소하게 되는 원리이다.

 

 

2. 굶기 > 유산소운동 > 근력운동

 

다이어트의 방법은 크게 세가지가 있을 것 같은데,

위 나열한 순서는 좋은거 순서가 아니라 난이도 순서이다.

뭐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어려운게 굶는것이라 할 수 있다.

 

간헐적 단식이니 뭐니 해서 저녁 굶어서 살빼겠다고 참다가

야밤에 배고파서 일어나서 야식에 맥주한잔 하고 잠드는거 그거만큼 꿀인게 없다.

진짜 매일 밤 그짓 하면서, 살은 내일부터 뺄거야 라고 되뇌었던게 우리의 모습이다.

 

 

그다음 유산소운동인데

 

이건 진짜 고문이 따로 없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시간도 오래걸리는데, 근데 생각보다 칼로리 소모는 적다.

 

 

따라서 가장 쉽고 시간도 적게 드는게 근력운동이야.

사실 유산소 무산소 구분하는건 좀 말이 안되긴 하다.

근력운동도 아주 빡세게 하면 심장이 근육에 피를 밀어내면서 심박수도 엄청나게 올라가고 호흡량도 많아지기에.

 

 

그런데 흔히 말하는 유산소운동처럼 근육의 힘을 적게 쓰면서 장시간 운동하는

조깅이나 줄넘기같은 것들보다 근력운동 할 때 사용하는 열량이 훨씬 크다.

당장 사용하는 열량도 그렇지만, 근력운동의 장점은 훨씬 많다.

 

 

3. 근력운동의 장점

 

다이어트에 관한 글들을 보면 이런내용이 많이 나와있을 것이다.

 

'굶는게 가장 효과가 좋다'

'굶지않고 살빼는 방법은 없다'

 

근데 틀린 말이다.

 

 

 

 

 

아마도 중국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나온 사진일 것인데,

둘 다 180cm에 75kg

 

180cm에 100kg인 사람이 몇달을 굶기만 해서 살을 빼면 오른쪽 사진처럼 ET가 된다는 것.

 

우리나라 BMI(체질량지수) 기준을 보면 180cm에 75kg은 과체중이다.

이게 웃긴게 뭐냐면 근육량은 그냥 쌩까고 깡 마른 멸치만 정상체중으로 분류된다는것.

그러니까 오른쪽넘처럼 180cm에 75kg에 운동 하나도 안한 친구는 한국 기준에서 딱 보이는대로 과체중이 맞다.

 

 

그런데, 우리 몸에서 근육(활동하고 힘을 쓰는 용도)이 사용하는 열량은

지방세포(열량 축적이 목표인 세포들)가 사용하는 열량보다 훨씬 많기때문에

 

저 두명이 예를들어 같은 양을 계속 먹으면,

왼쪽은 살이 빠지고 오른쪽은 반대로 살이 찌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게다가 왼쪽 몸매를 한 놈은 평소에도 운동을 꽤나 열심히 하는 놈이기 때문에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되지.

 

 

자 그럼, 같은 180cm에 90kg인 운동 전혀 안하던 사람이 평소 먹는대로 먹으면서

어느날부터 하루에 팔굽혀펴기 최소한으로 잡아서 15개씩을 매일 한다고 치자.

 

그럼 같은 조건에서 아예 전혀 그냥 운동을 1도 안한 친구보다,

적어도 가슴이랑 팔 근육이 진짜 아주 조금씩은 발달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몇 달, 몇 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아주 적은 차이지만 몸매는 계속 격차가 벌어질 것이다.

 

이게 포인트.

 

 

근력운동은 앞서 말한것처럼, 굶는거나 고통스러운 유산소 운동에 비해

난이도가 굉장히 쉬우면서도(팔굽혀펴기 깔짝 1분 하는게 어려우면 다른건 아무것도 못하겠지)

근본적으로 체질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

 

 

체지방은 줄어들고, 근육량은 늘면서, 근육이 소모하는 열량이 지방세포보다 많기때문에

같은 체중이라도 기초대사량이 늘어서 같은 양을 먹어도 살이 덜 찌게 되는것이다.

 

몸매가 좋아지고 내장지방이 걷히고 혈중 콜레스테롤이 낮아지고

각종 성인병도 예방되고 얼굴까지 갸름해지는건 보너스.

 

 

또한 우리는 이런 과정을 단축시킬 수 있어.

하루에 팔굽혀펴기 15회는 너무 적으니까 운동강도를 조금만 높혀주면 돼. 간단하다.

 

 

4. 근육과 체지방의 특성

 

여기까지 읽으면서, 부족하나마 근력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동의하게 되었다면, 방법론적인 내용도 중요하겠지.

그러려면 우선 근육과 지방의 특성부터 파악해야된다. 근육은 사용하지 않으면 서서히 퇴화가 진행돼.

왜냐면 음식이 충분하지 않았던 야생에서, 열량 소모는 꼭 필요한 만큼만 이루어져야 유리했었기 때문.

 

그러니까 근육을 쓰지 않으면 불필요한 열량 소모를 막기 위해, 그냥 움직일 만큼만 놔두고 최대한 퇴화시키는 것이다.

 

반면 음식을 필요보다 많이 섭취하면 당연히 지방으로 축적시킨다.

음식을 언제 이렇게 풍족하게 먹을 수 있을지 우리 몸은 모르니까,

나중에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형태로 축적시키려고 하는것.

 

그렇기 때문에, 살찐 돼지가 운동을 안하고 굶어서 살을 빼면

우리 뇌가 보기에, 아 얘는 근육은 필요 없는데 열량이 잠시 부족하게 들어오는 시즌이구나 라고 인식하고

근육과 체지방을 같이 소모하게 되는 것이다.

 

이걸 근손실 이라고 이야기해.

 

위 몸매비교 사진의 오른쪽 ET가 왜 탄생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는가?

근손실을 막지 않고 무작정 굶었기 때문.

 

 

 

그럼 근육은 어떻게 유지되고 만들어지냐?

우리가 특정 근육을 무리하게 사용하면 근섬유가 손상된다.

그래서 학창시절 학교에서 떠들다가 걸려서 오리걸음좀 하면

그다음날 다리땡겨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하게 되는것.

 

이때 우리 뇌는 아 이놈이 다리근육이 부족하구나 하면서,

몸에 공급된 영양소들을 이용해서(주로 단백질) 손상된 근섬유를 복구시키는데, 기존보다 조금 더 보강설계를 하게 된다.

이게 바로 근육 발달의 메커니즘. 그리고 이 과정은 보통 만 2-3일 정도 걸린다고 알려져 있어.

 

 

5. 자극과 고립과 분할

 

자극은 말 그대로 근육을 격렬하게 사용해서 근섬유가 손상되고

그 부분에 근육통이 생기는 현상 또는 그 과정을 이야기 한다.

 

고립은, 내가 타겟으로 생각하는 근육 외에 다른 근육이 개입되는걸 막는걸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가슴운동을 하려고 딥스를 하는데 삼두가 너무 많이 개입되면 가슴운동이 덜 되지 않겠는가?

 

분할은, 내가 운동하려는 부위를 2, 3, 4 군데 정도로 나누어서 매일 다른 부위를 자극하는 방법.

이걸 2분할 3분할 4분할 이라고 한다.

 

 

그래서 근력운동은 어떻게 해야되냐?

 

이제 막 운동을 시작했다면 푸시업만 꾸준히 해도 안하는것보단 효과가 당연하겠지만 있다.

아니면 헬스장 가서 이것저것 머신들 사용해서 땀날때까지 운동하는 방법도 있겠다.

이런걸 '무분할' 이라고 한다.

말그대로 분할 없이 운동하는것.

 

 

그런데, 스타크래프트를 할 때도 무식하게 똑같은 건물 계속 짓는것보다,

같은 자원과 시간을 가지고도 최대의 효율을 내는 방법(빌드오더)이 따로 있듯이 운동도 마찬가지.

 

 

 

 

 

위 그래프는 좀 과장된 그래프인것 같기는 한데, 매일 같은 부위의 운동을 반복해서 하게되면

두번째 그래프처럼 오버워크(과훈련)이 되어

근육이 회복되는 시기에 다시 자극이 들어가면서 근비대 측면에서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되면 똑같은 열량을 소모하면서 운동을 해도 내가 남들보다 몸매가 늦게 좋아지는,

즉 효율이 낮은, 보디빌딩보다는 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게 되는 셈.

 

 

보통 많은 선구자들에 의해 같은 부위는 일주일에 1-2번 자극하는게 가장 좋다고 알려져 있다.

3분할이 좋은 점은, 3가지 부위를 번갈아가면서 월화수 목금토로

주2회 반복하면 일주일이 아주 알차고 효율적으로 돌아간다는 것.

 

예를 자면,

 

월요일 가슴, 삼두(벤치프레스, 푸시업, 딥스 등)

화요일 등, 이두(풀업, 친업, 덤벨로우 등)

수요일 어깨(숄더프레스, 사이드 레터럴 레이즈 등)

 

처럼 같이 운동하기 좋은 부위들로 묶어서 운동하고

목금토는 똑같이 반복하고

일요일은 휴식하거나 하체/코어를 조지는 식으로 하는 것이다

 

아니면 미는운동 당기는운동 하체 이런식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본인 하기나름.

 

 

운동의 구성은,

 

부위마다 다르지만 최대한 힘을 짜냈을 때 10-20회 정도 할 수 있는 무게가 가장 적당하다.

 

이렇게 10-20회(reps)를 1세트(set) 라고 하고,

세트와 세트 사이 휴식시간은 3분 내외,

하루 5-10세트 정도 더 해도 되고 재량껏.

 

운동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게 맞을까?' 하는 의구심을 버리는것인 것.

 

 

6. 벌크업/커팅과 식단

 

 

운동하면서 열량을 과하게 섭취하면 벌크업이 되고 빈약하게 섭취하면 커팅이 된다.

 

물론 여기서도 효율의 문제가 있어서,

벌크업 할 때는 탄수화물을 적절히 섭취하면서 단백질을 심하게 많이 먹어야 벌크업이 잘 되고,

커팅시에는 근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소한의 탄수화물만 섭취하면서 단백질도 꼭 필요한 양(보통 체중의 1-1.5배g)만 섭취하는게 효율적이지. 나트륨 배출을 위해 물과 칼륨도 많이 먹고.

 

 

사실 벌크업과 커팅을 극단적으로 반복하는게 가장 효과는 좋다.

문제는 그러려면 엄청난 노력과 체계적인 식단관리가 필요하다는거지.

 

우리같은 일반인은 그렇게까지 하기는 힘드니까,

그냥 운동 꾸준히 하면서 탄수화물(라면 떡볶이 파스타 빵 등등)만 좀 줄여줘도 충분하다.

 

그리고 운동 30분 전에는 탄수화물을 조금 섭취해서 격한 운동에 필요한 열량을 공급해주고,

운동이 끝나고 나서 회복기에는 단백질을 꼭 섭취해 주도록 하자.

 

보통 닭가슴살 100g에는 단백질 20g, 단백질 보충제 한 스쿱에도 20g 정도가 들어있고

한번에 너무 많은 단백질을 먹어도 다 섭취가 안되고 똥오줌 으로 배출된다고 하니, 

적은 양을 나누어 꾸준히 섭취하는게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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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선 "유전, 진화."라는것에 대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다.

 

 

유전이라는 것은 우선 부모(조상)가 갖고있는 유전형질을 생식을 통해 자식(자손)에게 물려주는것을 의미한다.

(개체간의 성별이 구분되고 같은 종 다른 성끼리 생식하는 유성생식에서)

 

알고있으면 좋기도하고,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ABO혈액형

(상(常)염색체상의 유전자에 의해 지배되는 비반성(非伴性) 유전형질중 하나을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우리가 혈액형이라고 부르는 A형 B형 O형 AB형이 있다.

A형은 사실 AA형 AO형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B형은 BB형 BO형, O형은 OO형인데 여기서 각 형질을 독립적으로 나눈 A,B,O를 유전형질이라고 한다.

그리고 A와 B와 O는 서로 대립하는 위치에 있으며(생식시 두개가 대립되어 유전하므로) 이를 대립형질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성과 열성이 있다.

여기서 우성은 "좋다." 열성은 "나쁘다." 를 의미하는건 아니고 대립형질끼리 대립하여 유전 한 결과,

겉으로 나타나는게(발현한다. 라고도 한다) 우성형질이고

겉으로 드러나진않고 유전자에만 쓰여있는것이 열성형질이라고 한다.

 

 

A, B는 우성형질이고 O는 열성형질이다. 그리고 A와 B는 서로 우열이없고 공동 우성이라고 한다.

공동 우성형질끼리는 유전시 둘다 발현된다. (AA+BB = AB AB AB AB, AO+BO= AB AO BO OO)

 

 

우성과 열성의 법칙을 따라서

AA형과 AO형은 모두 겉으로 A형으로 나타나는데 이렇게 겉으로 나타나는 A형 B형 AB형 O형은 표현형이라도 부른다.

 

 

표의 내용대로 

A(AA)형과 O(OO)형의사람이 생식하면 자식은 무조건 A형(AA)이다. 

O는 열성형질 A는 우성형질이기때문에 그렇다. 

 

AO형과 AO형은 둘다 A형이지만 생식하면 (AA, AO, AO, OO) A형보다 낮은 확률로 O형의 자식이 나올 수 있다.

 

AO형과 BO형이 만나면 A형 B형 O형 AB형 다 나온다. (A+O = A, A+B = AB, B+O = B, O + O = O형)

 

A(AO)형과 B(BB)형이 만나면 B형 AB형 (AB, AB, BO, AB) 

 

드물게 우리나라 CIS AB라는게 있는데 

 

A,B가 한곳에 같이 붙어있기에 AB+O 이런식으로 나타나는 돌연변이 유전형질이다.

우리나라 전라도와 일본의 규슈 지역에서만 나타난다..

 

이 CIS AB는 특이하게 O형과 만나서 AB형 혹은 O형이 나온다. (ABO + O = AB형 O형)

 

정상적인 혈액형에서는 AB+O = AO, BO(A형, B형)가 나오지만

 

AB가 같은 위치에 붙어있는데다가 O형과 붙어있는 기괴한 형태 때문이다.(CISAB = ABO, 원래 AB형은 그냥 A+B임)

 

그리고 새로운 CIS AB의 형태인데, B형과 B형이 만나서 B형 O형 CISAB형이 나온다.

 

 

 

 

 

그리고 완두콩에 관해서는 외형적으로 완두의 둥근부분과 주름진부분이 대립형질이 되는데

인공교배시 다음 1세대에서는 무조건 둥근형질만 발현된다.  (둥근부분이 우성형질)

 

 

이런것도 있는반면 불완전우성이라하여 

 

 

 

 

 

대립 형질 중 우열관계가 불완전하여 붉은색과 흰색이 섞여버린 잡종이 나타 난 경우다.

 

 

그리고 공동우성이라하여 (앞서 말한 혈액형 A와 B가 공동우성이라 AB가 발현 된 것과 같은 매커니즘)

 

 

 

 

 

대립되는 유전형질 두 가지가 다 우성인 경우 두개가 동시에 발현되는 경우이다.

 

아래 짤은 순종의 흰 동백과 붉은 동백의 수정으로 생겨난 잡종 1세대의 표현 형질로 꽃잎의 색을 결정하는 두 대립유전자가 모두 우성일 경우이다.

 

이렇듯 부모의 유전형질이 생식 후 자손에게 물려지는 일련의 과정을 유전이라고 한다.

물론 모든 유전이 정상적으로만 일어나는것도 아니고 돌연변이도 가끔 나타나곤 한다.

 

유전자(DNA)에 변형이 일어나서 부모와 전혀 다른 유전형질을 갖게 되는데

 

 

인간의 경우에는

 

- 다운증후군 : 21번 보통염색체가 3개로 정상인보다 1개 더 많다. 두 눈 사이가 크게 벌어지고, 혀가 두꺼워 항상 입을 벌리고 있으며, 성장이 늦고 지능도 낮다.

 

- 클라인펠터증후군 : 성염색체의 구성이 XXY로 유방이 발달하는 등 불완전한 남자가 된다.

 

- 터너증후군 : 성염색체의 구성이 X로 겉으로 보기에는 여자이나 2차 성징이 느리고 키가 작으며 지능이 대체로 낮다.

 

같은 돌연병이성 유전질환이 있기도 하다.

 

 

이 처럼 콩 심은데 콩 나는것 팥 심은데 팥 나는것을 유전이라고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 부모에게서 유전형질을 반반씩 물려받고 그 중 낮은확률로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는 정도일뿐 

이 틀을 벗어나지않는다. 

 

이런것을 보고 어떤이들은 말한다.

"모든것은 유전에 의해 결정된다."라고 

 

이건 유전자에 관한 부분일 뿐인데. 이것을 결과론 적으로 착각하여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모든것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 되므로, 결과도 그 유전자를 따라간다 라고 말하며 본인의 상황에 빗대어 변명하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부모의 지능이 높아서 좋은 지능을 물려받았지만,

사고로 뇌의 일부가 다치게 되어서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이 사람은 분명히 지능에 관하여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았지만

사고 이후에는 그렇다고 말 할수 없게 되었다. (물론 유전자에는 쓰여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부모의 유전형질이 달리기에 특화되어있고,

돌연변이 없이 그 유전형질을 그대로 물려받은 자식이 있다.

 

그런데 그 자식은 달리기를 떠나서 운동 자체를 싫어하고, 달리기를 잘 하지 않는다.

물론 달리기에 있어 유리한 유전형질을 물려 받은 사람보다는 달리기에 재능이 있겠지만

사용하지 않고 발전시키기않았으니, 오히려 달리기를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는 달리기를 잘 못할 확률이 매우 높다.

(물론 이 쪽으로 파고든다면 다른이에 비해 우수한 결과를 얻을 수 있겠다만)

 

이 처럼 결과에 있어서는 후천적인 부분을 간과할 수 없는것이다.

아무리 좋은것을 물려받아도 사용하지 않으면 쓸모 없고, 좋지 않은것을 물려받았다고 한들 노력이라는 부분으로 재능을 매꾸어 결과를 내면 되는것이다.

 

 

이 처럼 유전은 생존한 개체가 생식을 통해(유성생식, 무성생식 등) 자손에게 유전형질을 물려주는것을 뜻한다.

여기서 파생되는 개념인 진화라는것이 있는데, 진화라는 개념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진화라는 단어가 쓰이는 늬앙스때문에 진화라는것에 대한 의미를 잘못 알고있는 경우가 많다.

 

 

 

퀴비에

 

 

비교해부학의 창시자이자 고생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동물학자 퀴비에는

어느 날 매머드와 메가테리움(멸종한 코끼리 크기의 대형 나무늘보의 일종)의 화석을 조사하던 도중

이 화석들이 현생하는 나무늘보나 코끼리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전혀 다른 종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탐험가들 또한 거의 지구 전 지역을 탐험 한 와중에도 그렇게 거대했던 생물들이 발견되지 않았던 점을 근거로,

그 고생물들이 모두 멸종했다고 발표를 하게 되었다.

 

모든 만물과 생명은 하나님이 창조하였고 하나님 돌봄과 사랑을 받게 된다는것이 만연한 사실이 된 가운데

어느 종이 멸종 한다는거 자체는 아마 당시에 신선한 충격이었을거다.

 

화석에 대한 퀴비에의 연구는 계속 되었는데 그는 지층을 조사하면서 종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현상을 발견했고

 

멸종의 원인은 대격변이며 생물들을 멸종시킨 격변은 과거 여러차례 있었고

노아의 홍수(당시에는 만연한 사실로 받아들여 졌음)가 아마 가장 마지막에 일어난 격변이었을 것이라 주장했다.

그리고 멸종 뒤에는 다른 생물종들이 재창조되거나 이주해오는 식으로 새로운 종들이 탄생했다고 생각했다.

 

그 주장을 듣고 같은 동물학자인 라마르크(진화론의 창시자, 대표적으로 용불용설이 있다.)는

진화론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라마르크 : 퀴비에 교수, 자네는 종들이 격변 때문에 멸종했다가 이주나 재창조로 새로운 종들이 등장한다고 했지?

 

퀴비에 : 그렇습니다.

 

라마르크 : 그런데 말이야, 그 멸종이라는게 사실 없었던거 아닐까?

 

퀴비에 : 네?

 

라마르크 : 그러니까 멸종했다는 종들이 사실 멸종한게 아니라 자네가 말하는 새로운 종으로 "변화"한게 아닐까 하는 것이네.

 

퀴비에 : 종이 다른 종으로 "변화"를 한다니 그런 황당한 말이 어디있습니까?

 

라마르크 : 왜 황당하다고 하는가?

 

퀴비에 : 얼마전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이 이집트에서 귀환하면서 사람과 학의 미라를 가져오지 않았습니까?

 

분명히 수천년전 까마득한 옛날의 것들인데도 현대와 똑같은 종이었습니다. 종들이 다른 종으로 "변화"를 한다면 그 미라들이 오늘날과 같은 종일 수 있단 말입니까?

 

 

 

리마르크

 

 

이렇게 퀴비에의 연구에 영감을 받은 라마르크를 시작으로 진화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라마르크에 의하면, 생물은 진화하는 내적인 '경향'을 갖고 있고,

환경이 변화하면 그것이 일으키는 '요구'에 의해 습성의 변화가 일어난다. 

그에 따른 기관의 사용ㆍ불사용은 기관의 발달과 퇴화를 초래하고, 그것이 유전되어 생물이 변화(진화)한다. 

이것이 라마르크의 유명한 용불용설(用不用說)이다.

 

쉽게 말하면 기린이 높은 나무에 달린 풀잎을 먹기위해 노-오력을 하니 목이 길어 질 수 있었고,

그것이 유전형질에 영향을 미쳐, 후손에게 유전 될 것이라는 이야기. 

 

라마르크의 진화론은 당시에 창조론이 대세인 시대적 배경이었기에,

동료 학자인 퀴비에를 포함한 여러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핍박을 받았고

무신론자라고 조롱받으며 비난당했으며 그로인한 빈곤과, 가정적 불행이 계속되어 실명하고

마침내 고독하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다윈

 

 

이렇게 진화론은 시작되었고, 이를 계승하여 진화론의 아버지라 불리는 찰스 다윈이 등장하게 되었다

 

 

 

 

 

우선 진화란 학문적 의미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사용하기에 그 의미가 발전하고 발달하는 의미이지만

이처럼 학문적인 의미로써 진화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적자가 생존하여 번식하게 되는 것)을 이야기 한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종이 살아가고있는 환경에 적응하여 생존하게되고

그 생존한 종들이 번식하는 일련의 과정을 진화라고 한다.

다른 모든 유기체를 포함, 인간의 생도 이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각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에 대해서 적응하지못해 생존하지 못하면 그 개체의 유전자는 생식되지않으니

사라져 버리고 만다.(대가 끊기고 죽어버리면 말 그대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는거다.)

 

그런 반면 환경에 적응하게되어 생존을 하게되면, 생식을 할 수 있게 되고,

유전자를 유전하고, 자연에 선택되어 진화 한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인간은 생존과 진화함에 있어 심리적인 부분도 굉장히 크게 작용하는데

모든 인간의 무의식은 일반적으로 생존과 번식을 주 목적으로하여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어있다.

(사실 다른 유기체들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이를 심리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는 학문이 진화심리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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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승만은 1875년에 태어난 인물로 출생일 기준으로 이승만과 정조 사망(1800년)의 시간적 거리가

2019년인 오늘보다 더 짧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의 인물이다.



매일신문



2. 이승만은 우리나라 최초의 일간지인 '매일신문'의 창립자이다.





3. 이승만은 스무살 때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발생하자,

그 원수를 갚겠다는 (춘생문 사건) 계획을 세웠다가 발각되어 피신한 적이 있다. 





4. 이승만은 고종 폐위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20대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냈다.
투옥 도중 탈옥 시도를 한 적이 있으나 다시 잡혀 곤장 100대를 맞았고 같이 탈옥시도를 했던 사람은 사형당했다.

당시 고문의 후유증으로 평생 안면경련증에 시달렸다.





5. 이승만은 투옥 도중 성서를 읽으며 영한사전을 집필했고, 계몽운동의 연장선으로 '독립정신' 52편을 저술했다. 





6. 이승만은 29살 석방되고 42년이나 미국에서 생활하였다.

미국에서 조지워싱턴 철학 학사, 하버드 영문학 석사, 프린스턴 국제법 박사를 취득했는데

이는 대한민국 1호 박사 학위다.





7. 이승만은 미국에서 활동할 때 미국인들보다도 더 반공주의자인 것으로 유명했다. 





8. 이승만은 일본인이 보낸 밀정의 저격을 받은적이 있다. 2~3발의 총성이 있었으나 불발이라 살아남았다. 





9. 이승만은 하와이에 있을 때,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숯 사업을 한 적이 있다.





10.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었을때 나이가 74살,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을 했을때 이승만의 나이는 76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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