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군 시장에는 보석가게도 있었다. 버마는 보석이 많이 나는 곳이었기 때문에 루비나 비취가 특히 싼 편이었다.
친구들 중에는 보석을 많이 모으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하나정도는 가지고 있는게 좋을 것 같아서 큰 맘 먹고 다이아몬드를 사기도 했다. 일본의 활동사진이나 일본에서 온 가부키 공연을 보러 간 적도 있었다. 가부키는 배우들이 의상을 여러 개 겹쳐 입고 있던 것과 남자배우가 여자 역할을 하던 것이 신기했다.
어쩌다 모처럼 놀러 왔으면서도 방구석에 방구석에 아무 말도 없이 무릎을 꿇어 앉아 있는 젊은 병사들도 간혹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상관에게 얻어맞았다거나 해서 엄청 속이 상하거나, 돈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내가 술을 살게요 하고 술을 사서 마시도록 해주었다. 그런 일은 곧바로 부대에서 소문이 퍼졌던 모양으로 며칠 뒤면 반드시 그 병사의 상관인 사람이 와서 표를 한 두장 여분으로 놓고 돌아가곤 했다. 그럴 때면 팁도 쥐어 주었다.
그 당시 천원이면 대구에서 작은 집 한채를 살 수 있었다.
저금해 둔 돈 중에서 5천 엔을 송금했다. 담당하는 병사에게 물어보니 "저금이 있다면 전부 보내는 게 좋을 걸." 이라고 했지만, 나는 "남은 돈은 조선에 돌아가서 출금할 거니까 괜찮아요."라고 대답하고 전부 부치진 않았다. 우선 부친 돈이 제대로 도착할지가 걱정이었고, 겨우 모은 저금이 없어지는 것도 왠지 불안했다.
우리가 사이공에 있었던 그 때가 우기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사이공에서 레인코트를 샀던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레인코트는 프랑스산으로 아주 산뜻한 녹색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 녹색이라 그 레인코트를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디자인은 특별한 것이 없었으나 타는 듯한 녹색이 아주 멋졌다.
나는 악어가죽 핸드백에 하이힐을 신고 녹색 레인코트를 입은 멋진 차림으로 사이공의 거리를 활보했다. 아마 누가 보더라도 내가 위안부로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아주 그립고 그때의 자신만만함이 되살아나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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