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반도체 기업이다. 

 

 

 

 

인텔

 

 

 


1957년은 실리콘밸리의 원년으로 불리는 해이다. 왜냐하면 그 이전 까지 실리콘밸리는 농업을 주로 하는 촌이었다. 
이 때, 실리콘밸리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윌리엄 쇼클리라는 박사가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를 세우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낙후된 촌동네인 실리콘밸리에서 근무를 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윌리엄 박사는 자신이 직접 20명의 연구원을 영입하게 되는데,

여기에 인텔의 창업자인 고든 무어와 로버트노이스, amd창업자 제리 샌더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윌리엄 쇼클리

 

 


쇼클리 반도체에서 연구를 하던 연구원들은 쇼클리박사와 생각과 연구방향이 달랐고

결국 8명의 엔지니어들이 쇼클리 연구소를 나와 독자노선을 걷게 된다.
이윽고 기업을 만들게 되는데 그게 페어차일드 반도체라는 익숙한 회사이다.

 

 

 

 

소련의 인공위성

 

 

 

1957년 당시 소련은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인공위성을 우주에 쏘아올렸고, 
미국은 거기에 충격을 받아서 NASA를 설립하고 대대적으로 우주항공과학에 투자를 하게 되면서

고온에서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전자 부품이 요구되었는데, 페어차일드 반도체는 값은 비싸지만

고온에도 안정적이었던 실리콘 직접회로를 개발하여 세계최초로 반도체 양상에 성공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페어차일드 반도체

 

 


그런데 페어차일드 회사를 설립할 때 자금을 출자한 창업주가

자신들을 부당하게 대우했다고 느꼈던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 제리 샌더스는 페어차일드에서 나와

다시금 독자적인 기업을 차리게 되는게 그게 바로 오늘날의 인텔과 AMD이다. 

 

 

 


처음 인텔의 사명을 제작할 때, 노이스 무어 일레트로닉스(noyce-moore electronics)로 만들려고 했지만

잡음을 뜻하는 noise와 많다를 뜻하는 more의 합성어로 잡음이 많다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시켰다.

종래에는 통합을 뜻하는 integrate와 전자를 의미하는 electronics 두 단어의 앞글자를 조합해서 인텔(intel)이 되었다.



 

 

인텔의 창업주 고든 무어
인텔의 창업주 로버트 노이스

 




인텔은 창립 초기에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던 회사였는데,

1960년대 미국 기업들은 회계 시스템이나 급여 장부, 의료 기록 등을 관리하기 위해 '메인프레임'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메인프레임의 메모리 장치는 낙후된 상태였고,

그래서 시장은 데이터와 프로그램을 쉽게 저장할 수 있고 빠르게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새로운 컴퓨터를 원했고, 이 시장이 커질것이라고 예측한 고든 무어는 유명한 말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무어의 법칙이야.

 

 


*무어의법칙*

 24개월마다 칩에 집적할 수 잇는 트랜지스터 수가 2배씩 증가 한다는 것 

 

 

 

 

인텔 1103

 

 


인텔은 1970년 인텔은 인텔 1103이라는 1kbit DRAM을 출시하면서

인텔 1103은 2년 만에 세상에서 가장 잘 팔리는 반도체가 되었다.

이로 인해 인텔은 유명한 메모리 회사가 되었고, 1971년 공식적으로 첫 흑자를 기록하였다.

 

 

 

 

인텔 4004

 

 

 

이후 인텔은 인텔 4004로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에 진출했고 인텔 8088의 성공 덕에,

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과 함께 1970년대에 접어들어 인텔은 엄청난 성장을 하게되는데,

1980년대 일본 반도체 회사들이 우후죽순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고

인텔의 방향은 바뀌었다.

 

 

 


인텔은 cpu사업에 집중을 하면서 8086이라는 cpu를 만들고 그후 8088이라는 cpu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 cpu가 컴퓨터완성업체 1위 기업인 ibm컴퓨에 사용되면서 인텔은 엄청나게 성장을 하게 되었다.

또한 이로 인해 전 세계적인 압도적인 반도체 1위 회사로 군림을 하게되었고,

인텔은 이제 ibm이랑 협력을 하는게 아닌 독자 노선으로 cpu를 판매하기로 결정을 하게 된다.

 

 

 

 

인텔 펜티엄3

 

 


시간이 흘러 1990년에 들어 서면서 전 세계에 데스크탑이 보급되기 시작하고

이때 한국에도 데스크탑이 보급되고 pc방이 생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데스크탑을 구매하게 되면서

한국에도 인텔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고 컴퓨터 cpu는 인텔의 팬티엄 이라는 공식이 생기게 된다. 




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에 컴퓨터를 구매하면 본체에 이런 스티커가 붙어있는걸 많이 볼 수 있었다.
인텔은 팬티엄1 팬티엄2 팬티엄3 팬티엄4와 첫 듀얼코어 cpu인 팬티엄d까지 만들어 내는데

이 때 팬티엄4때 잠깐 인텔이 주춤하게 되면서 amd가 cpu시장에서 치고 올라오게 된다.

그후 인텔은 코어2듀오 울프데일 요크필드 켄츠필드 같은 cpu를 만들면서 amd에 반격을 하게되는 양상으로 접어든다.

 

 

 

 

인텔 코어i 시리즈

 

 


그리고 2010년대에 들어서 인텔은 새로운 cpu 시리즈를 런칭하게 되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코어i시리즈이다. 
코어 i시리즈 1세대 린필드가 발표 되면서 인텔은 완전히 amd를 밟아 버리게 되고,

2세대 초 명작 샌디브릿지가 나오면서 amd와 다시금 격차를 크게 벌리게 되다.

 

 

 


그러나 인텔은 완전히 cpu시장은 본들의 독점시장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더이상의 기술 개발 투자는 하지 않고 클럭만 조금 올리고 메인보드 소켓만 바꾸는 장난질을 하면서

엄청난 돈을 벌어 들이게 된다.


 

 

AMD와 인텔의 시장 점유율 추이

 

 



이 메인보드 소켓 장난질에 슬슬 소비자들은 불만을 가지게 되었지만,

인텔 말고는 대체할 cpu가 없었기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은 울며겨자 먹기로 
인텔 제품을 계속해서 구입을 하게되는데 이때 영원히 나락일줄 알았던 amd가

mit 출신 박사를 영입해서 반격을 할려고 준비를 하게 된다.

 

 

 

 

리사 수

 

 

 

인텔에 밀려 영원히 나락으로 떨어질것만 같았던 AMD는 리사 수의 영입으로 반전을 맞이한다.
데스크탑과 랩탑 vga시장은 엔비디아, cpu시장은 인텔이 꽉 잡고 있는 형국에서

amd는 틈새 공략을 하게 되는데 바로 콘솔 시장이다.
amd는 ps xbox 에 자신들에 회사 cpu와 라데온그래픽 카드는 공급하여 돈을 벌고

그 돈을 이용해서 cpu를 새로 개발하여 반전의 무기로 꺼내드는데, 바로 라이젠이다. 

 

 

 

 

 

 

AMD 라이젠

 

 


라이젠은 처음 출시했지만 역시나 cpu시장은 인텔이 꽉 잡고 있었기 때문에 판매량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amd는 3가지 전략을 펼치는데,

첫번째는 인텔보다 많은 코어와 쓰레드
두번째는 인텔보다 저렴한 가격
세번째는 2020년 라이젠4세대가 나올때까지 메인보드 소켓을 바꾸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이에 인텔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의 많은 구매로 이어졌고,

amd는 그 돈으로 라이젠 2세대 피나클릿지 3세대 마티스 까지 출시를 하게 되는데

하지만 역시 태생정 한계때문에 amd cpu는 인텔 cpu성능을 이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amd cpu는 ccx 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cpu인데 2개 코어를 인피니티 패브릭으로 연결해서

io다이에 연결하는 방식으로,

ccx구조의 장점은 낮은 단가로 많은 코어와 쓰레드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이는 자본이 인텔에 비해 부족한 amd에게는 딱 알맞는 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라이젠 CPU

 

 


위 그림은 라이젠 CPU 구조인데, 왼쪽은 ccx 2+2 구조로 되어있고 왼쪽 ccd는 원칩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사로 치면 ccx 사장->이사->직원으로 소통이 된다면,

ccd는 사장->직원으로 바로 소통이 되기때문에 amd의 cpu는 한단계 더 거치는 과정으로

지연시간이 발생되는데 그게 바로 레이턴시 라고 한다. 

 

 

 


그래서 amd도 이 레이턴시를 줄이기 위해서 드디어 4세대 베르메르 에서는 ccd구조된 cpu를 출시하고

기업 역사상 사상 처음으로 인텔cpu를 성능으로 역전하는 이변을 일으킨다.

사실 amd는 ccd구조의 cpu를 만들 자본과 기술력이 없었는데,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인텔의 ceo 크르자니크 라는 사람이었다.

 

 

 

 

인텔 CEO 크르자니크



크르자니크는 코어 i시리즈 출시이후 인텔이 cpu시장을 점령했다고 판단하여 cpu시장에 돈을 투자를 하지 않고

기업의 수익으로 여러가지 신규사업 모바일 사업에 투자를 하게 되는데 결국 전부 다 실패를 하게 된다.

 

 

 

 

 

 

 

 

인텔의 모바일 사업부 적자



거기다가 amd가 점유율을 조금씩 높여오는 동안 
4코어 8쓰레드 까지만 만들면 됐던 cpu도 코어와 쓰레드를 늘리게 되면서 생산단가가 늘어나고

모바일 사업부의 실패로 인해서 회사의 수익이 줄어들게 되었으므로 큰 타격이었다.

이때 다시 크르자니크까 회사의 수익을 늘리기 위해서 한가지 결정을 하는데 그게 바로 구조조정을 감행한다.

 

 

 


이때 크르자니크가 자사의 엔지니어들을 대거 해고하는 일을 벌이는데, 이것이 큰 나비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이후로 2020년 지금도 10nm 7nm 로 미세공정 진입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이때 해고당한 인텔 엔지니어들이 삼성, 애플, amd, 아마존, 구글, ms 등지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amd가 ccd구조의 기술력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최근 인텔이 큰 결정을 하는데 바로 제조업의 포기이다. 
인텔은 제조와 설계를 모두 하는 반도체 기업인데 인텔이 제조업 포기 선언을 하면서 인텔의 주가는 폭락하게 되고 


전 세계 1위 였던 인텔이 
하청업체 tsmc와 인텔 눈치나 보던 삼성전자, 인텔과는 비교 조차 할 수 없던 엔비디아에게

시가총액이 역전을 당하게 되면서 제국의 몰락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글로벌 반도체 시가 총액

 

 



최근에는 sk 하이닉스에 10조3000억에 낸드플래시 사업부 까지 판매하면서 제조를 완전히 포기하였고,

앞으로 tsmc나 삼성전자에 파운드리를 맡기는 상황으로 흘러갈 것이라 예상된다.

 

 

 

 

+ Recent posts